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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 구계정 글 정리
데미딕의 소재 멘트는 '전부 착각이라면,그렇다면..', 키워드는 현기증이야.
허전한 느낌으로 연성해 연성
연반뎀딕으로 딕 사망 주의. 캐붕은 늘 주의. 키워드를 보고 뭔가 쓰고싶었으나 실패함.. 의식의 흐름..
배트맨의 작은 울새가 죽었을 때, 가장 많이 울었던 건... 글세, 모르겠다. 겉으로 흘리는 것만이 눈물이 지닌 의미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는 그는 울새의 추락에 누가 가장 슬퍼했는지 따위를 겨루지 않았다.
데미안은 성인식의 전날, 가주의 이름을 완전히 물려받기 전날, 간소한 선물이라며 아버지에 의해, 어른이 된 자신을 위해 다시 꾸며진 웨인저의 서재 안, 정원의 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자리잡고 있던 소파에 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유리잔에 담긴 건 평소 즐겨 먹곤 하던 값비싼 와인이 아니었다. 얼음을 띄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코가 아릴 정도로 독한 술만이 고스란이 담긴 잔은 입을 몇번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보다 양이 확연히 줄어있었지만, 데미안은 줄은 잔을 몇번이고 채우며 비웠다.
남이 보면 혀를 찰 정도로 독한 훈련을 받고 험악한 나날을 보내온 배트맨이라고 해도 목을 태워버릴 기세로 넘어간 알코올이 몸을 장악하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데미안은 시발점을 찾을 수 없는 열이 순식간에 올라와 머리부터 시작해 천천히 몸을 잠식해가는 걸 느꼈지만 잔 안의 술에 다시금 입을 댔다. 눈알이 녹아버릴 것처럼 열이 붉은 혀로 눈알을 죄여와, 데미안은 손으로 눈두덩이를 꾹 눌렀다. 벌려진 입 사이로 튀어나올 것들이 많아 보였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건 결국 탄식어린 한숨 뿐이었다.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 스스로가 동경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 길을 선택했을 때, 처음 날개를 펼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후드려지게 맞을 뻔 한 스스로의 경험도 있었고, 자신의 아랫 동생들을 잃을 뻔 한 적도 무수히 많았다. 고담은 번화한 만큼 지독하리만큼 잔인한 곳이었고, 그곳의 빌런들은 몇십번을 아캄에 집어넣어도 다시 나와 그 정신나간 혀를 낼름거리며 머리통에 총구를 들이밀지 모를 일이었다. 데미안은 지옥같은 그곳에서 아버지를 잃을 뻔하고, 스스로를 잃을 뻔하고, 동생들을 잃을 뻔 했지만 정말로, 실제로 잃는다는 생각따윈 가져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자잘한 트러블로 언성을 높히곤 했던 팀의 말처럼 자신은 몸만 자란 어린아이일지도 몰랐다. 단언컨데, 데미안은 자신의 '식구' 중 누군가를 잃게 될 수도 있단 생각을 가져본 적은 추어도 없었다.
사람이 죽지 않는다거나, 영화처럼 기적같이 죽음의 문턱을 훌쩍 넘어 돌아온다거나, 하는 허황된 꿈이 아닌 - 데미안은 은연 중 밤 속에서 날개짓을 하는 박쥐와 새들 중 그들의 날개를 꺾어버릴 위협이 있을지언정, 혹은 날개가 꺾여질지언정 그 작은 모가지가 꺾여버릴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다. 그건 자신의 곁에서 파닥이던 새의 날개도, 모가지도 모두 꺾여진 후에야 스스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데미안은 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숙이며 양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얼굴에 열이 올라 시뻘게 진 게 피부 위로 느껴졌다.
" ....... "
벙어리라도 된 것 마냥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없었고, 입 밖으로 내고싶은 말도 없었다. 데미안은 지금 입을 열면 스스로 듣기에도 우스꽝스럽고 소름 돋을 것 같은 소리를 낼 것 같다 생각했다. 그건 짐작보다는 확신에 가까웠을 것이다. 데미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술기운에 벌개진 얼굴이 커다란 손에 가려져 그 아래 나온 입술이 짓이겨지는 게 드러나보였다. 리처드. 그 한마디를 꺼내고 싶었으나 알량한 자존심이 저가 짐승처럼 울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데미안은 자신을 지탱하듯 세워놓았던 그 알량한 자존심의 거부를 뿌리칠 자신이 없었고, 그렇기에 그가 입을 연 건 꾹 다문 입과 올라온 열기로 산소를 받아들이길 거부한 코에 폐가 기도를 두드리며 턱턱 숨이 차오를 때였다.
입이 열리고, 허억-하는 숨소리 이후로 뱉어질 것 같았던 앓는소리는 그의 착각이었다. 그는 짐승처럼 울지도, 앓지도 않았다. 그거 꺼낸 말은 단 한마디였다. 리처드. 데미안은 그 한마디를 스스로 들어도 소름끼칠 정도로 이질적인 목소리로 불렀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열기가 들어차 흐리멍텅해진 시야 앞으로 서재가 흐릿하게 들어찼다. 데미안은 그제서야 왜 자신이 서재로 온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이 서재 속에는 아이가 떨어트리고 간 웃음과 깃털들이 흔적처럼 즐비해있었다. 선물이라며 알록달록한 동화책을 어울리지도 않는 고서 옆에 끼워둔 것들과, 언젠가 가져다 놓은 박쥐와 새모양의 장식 인형이며, 갈색과 고동색의 어두운 색 속에 드문드문한 유색으로 빛나는 아이의 흔적들. 순식간에 몰아쳐 이 집의 모든 것을 흔들고 간 게 착각인것마냥 아이의 흔적이 그 서재 속에 고스란이 남아있었다.
조커딕/카피캣팀
소년들은 혈기왕성한 시기가 되면 각자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할 무언가를 찾기 마련이었다. 어떤 이는 자동차, 어떤 이는 친구들과의 도를 넘은 장난, 어떤 이는 여자. 하지만 팀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또래의 소녀도, 친구들과의 위험한 장난도 아니었다.
팀은 ‘그 남자’에게 숭배에 가까운 마음을 가졌다. 고담에 삶의 터전을 두고있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두려워해야할 존재. 이름만으로도 위협적인 그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빛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는 조커는 팀을 그 어떤 것보다 더욱 황홀경에 빠트렸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강렬하고도 기괴하게 올라간 붉은 입매. 광기를 고담의 밤에 뿌리고 다니는 미친 광대에 빠져들게된 건 어느 날을 기점으로 그가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팀은 그저 여느 또래들과 다름없이 크고 작게 일어나는 범죄에 일반인과 비슷한 기준치의 관심을 두었을 뿐, 그에게 남다른 관심도 애착도 없었다. 조커란 그저 고담에 살게 되면 한 번 이상은 듣게 되는 미치광이의 이름일 뿐이었다. 하지만 3년 전. 미친 광대라는 상징은 같지만 모습도, 그리고 약간의 범죄 방식도 다른 조커가 나타난 뒤로는 팀은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시간을 그에게 바치듯 했다.
일반인인 팀이 조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조커가 ‘대체’되었는지, 대체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팀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조커였다. 뒷골목에 서식하는 사람과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가정집에서 태어난 14살의 소년이 알아 볼 수 있는 수단이란 거의 없었지만 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리고 그 선을 넘어보려 아등바등하면서까지 그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고, 빠져들었다. 한 번 빠져들면 발을 빼내기 힘든 늪같은 광기 속으로 몸을 던진 소년이 모방 범죄로까지 손을 뻗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모방 범죄에 한번 손을 뻗은 팀은 영특하고 영리한 아이답게 누군가에 들키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그리고 누구에게 들키지 않고 일상 속에서 평범한 가정집의 평범한 아이로 살아가며 조커와 자신을 가깝게 만들었다. 카피캣이 된 것이다. 팀은 솜뭉치 안에 발톱을 숨길 줄 아는 섬세한 카피캣이 되어 그를 향한 열망으로 우물을 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뛰어난 카피캣으로서 손 안의 발톱을 꺼내들었을 때 그와 마주한 것을, 팀은 운명이란 타이틀을 걸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뻐했다. 창백함과는 다른, 탁한 녹색 머리카락 아래 하얀 분들이 틈없이 칠해진 얼굴 위로 붉은 특징이 휘말려올라가있는 그를 보며 팀은 공포가 아닌 황홀경 속에서 숨이 멎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가까이서, 직접. 그와. 놀란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하는 팀을 보며 조커는 나이프로 손장난을 쳤다. Why so serious? 그리 물으려던 조커는 팀의 얼굴을 물들인 게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동경에 가까운 것임을 읽고는 눈을 잔뜩 휘어 웃었다. 가늘어지는 눈매가 소름 돋을 정도로 매력적인 웃음이었다.
“ 이 상황이 무섭지 않나보네. 그렇지? ”
너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묻는 물음 뒤로 찰칵거리는 나이프 소리가 두 번 효과음처럼 들리고, 팀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며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 원래 있던 조커가 당신이 아니란 걸 알아요. 조커가 사라지고 당신이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
조커는 손톱에 칠해진 매니큐어를 보는 여자처럼 나이프를 눕혀 날에 스며드는 빛에 시선을 둔 채 팀의 말을 들었다. 노랫소리같은 간단한 대답이 들려오고 그의 손에 몇십명의 입을 찢어놓았을지 모를 나이프가 들려있음에도 팀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 매일 당신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당신이 나오는 기사들을 스크랩하고, 당신을 생각했어요. ”
가히 스토커의 행실처럼 들리는 말을 들으며 조커는 눈만 굴려 주저앉은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살풋 휘어 접힌 눈매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푸른 눈에 약간의 흥미가 이는 것을 팀은 캐치할 수 있었다. 달칵, 하고 한번 접혔다 다시 날을 드러낸 나이프의 날을 반대 손, 하얀 장갑이 씌여진 손끝으로 훑은 조커가 물었다.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
팀은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팀은 그를 만나 가장 하고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건 팀이 수많은 매체에서, 그리고 자신이 모은 모든 것에서, 그리고 지금 바로 앞에 서있는 그를 보며 늘 생각하던 말이었다.
“ 당신이 가장 아름다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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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온이 이번 주구나
한동안 덕질을 하지 않고 있다가 돈 펑펑 쓰고나니 디씨온이 이번 주라는 걸 깨닫고.... (털썩
팀딕과 뎀딕이 너무너무 보고싶슴다.. 뎀딕이 제일 보고싶슴다..
이제 본진이 뎀딕인 듯. 사실 딕+데미안의 조합 자체를 좋아합니다.
이슈는 찾아보지 않아서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모르지만...
과거에서 머물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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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4.20
가끔 내 쵱컾은 팀딕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처음은 슨딕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팀딕과 뎀딕의 사이에서 갈팡질팡. 물론 팀뎀팀도 아주 그냥...
사실 팀->딕<-뎀에서 팀뎀이 서로 으르렁거리다 눈 맞는 걸 좋아합니다. 꼭 딕이 아니어도 얘네는 싸우겠지만 (슨딕은 원래 짝짝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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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3.23
짤은 없으니까 그냥~
요새 다시 시들시들 합니다.. 뭔가 하고싶은 건 많고, 해야할 것도 많은데 막상 하려고 보면 생각나는 게 없으니 원..
덕질도 하고싶고 다 하고싶은데 휴덕기가 갈 것 같으면서도 가질 않네요 끙
먼 시간에 앞둔 많은 것들이 지금부터 눈에 훤해서 그런가봅니다..:3 덕질하고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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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뎀] -
잠을 깨우는 것은 창문을 다 가리지 못한 커튼의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도, 일정하게 몸을 흔드는 시계의 초침도 아니었다. 밖은 새벽의 푸른빛으로도 물들지 못한 새까만 밤. 그는 제 위에 올려 진 묵직하다 하기엔 그 무게의 주인에 비해 너무도 가벼운 압박감에 잠을 깬다. 반짝, 전구에 들어온 불빛이 순식간에 어둠을 몰아내 듯 사라져버린 잠결은 멀쩡한 정신만을 남기고 사라지지만 정작 그의 눈이 뜨이는 것은 아침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덜미에 닿는 한 뭉텅이의 냉기에도 몸을 떨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잠이 떠나버린 정신으로 잠에 든 척 연기하며 자신의 위에 기척도, 소리도 없이 저를 누르고 있는 작은 존재를 묵인해 줄 뿐.
이따금 데미안은 공기조차 무겁게 잠든 밤에 딕의 방을 찾아오곤 했다. 그것은 평범한 방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 존재를 감추고 사람의 목덜미에 쇠붙이를 박아 넣는 암살자의 길을 걸어왔던 아이의 발걸음은 얕은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의 움직임보다도 눈에 띄지 않고 고요했다.
데미안은 방으로 와, 숨소리와 뒤척거림으로 침대 위를 배회하는 딕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어둠과, 그림자와 동화된 것 같은 아이의 모습은 그저 그 위에 선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 볼 뿐이었지만, 딕의 드러난 목덜미엔 마치 충동이라도 이는 양 달려들어 찬 공기에 식은 손을 대었다.
크기에 맞지 않게 굳은살과 상처로 여문 손은 점차 힘이 들어가며 그의 목을 조른다. 평소 데미안의 힘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질없는 힘이었지만, 딕은 데미안이 제 위에 올라 온 순간부터 잠에서 깨어나, 그런 아이의 행동을 감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딕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눈을 뜨지도, 이름을 부르지도 - 데미안이 제 기상을 눈치 챌 법한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잠을 연기했다.
데미안 역시 딕의 목 위에 손을 올린 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목을 조를 듯 손 끝에 담기는 힘은 아주 미미한 것이어서, 그 시간이 지나면 잠깐의 붉은 흔적마저 금방 사라져버려, 딕은 데미안의 이런 행동에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데미안은 그렇게 꼿꼿이 서 멈춰있다 온 것처럼 인기척 없이 가버린다. 딕이 눈을 뜨는 건 데미안이 떠나가고 난 뒤로도 한참이 지나서, 밤이 물러나고 새벽이 푸른색으로 감싸일 즈음이었다. 딕은 온기라 부르기엔 너무도 식어있던 손 끝이 머물렀던 목을 매만진다. 뒤늦게 뜨이는 눈엔 그 짧고도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의 순간 동안 데미안이 지을 표정이 그저 추측으로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시작된 일상에서 딕이 그 얘기를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데미안은 매일 찾아오는 게 아니었고, 그 아이의 방에 무슨 일이 있건, 데미안이 딕의 방을 찾아오는 것은 갑작스러웠기에 딕은 지금처럼 별다른 문제없이 넘어간다면 이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데미안이 밤중에 들리는 곳이 자신의 방뿐이란 이유도 있었지만.
데미안은 투덜대고, 신경질이 잦고, 화를 잘 내는 10살 꼬마였지만, 영특하고, 훌륭하며, 천재라는 타이틀도 모자랄 정도로 비범한 아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결여된 감정들 역시 딕과 알프레드의 도움으로 배워가고 있었고, ‘평범한’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는 데미안에게 또 다른 문제를 안겨주고 싶진 않았다. 딕은 개인의 문제를 철저히 방치한 채 썩어문드러지도록 두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민감한 문제를 들추어 그 안의 여린 살을 찌르는 타입도 결코 아니었기에.
데미안은 기본적으로 강한 아이니까, 딕은 데미안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그 일을 내뱉을 때 까지는 언급하지 않자고 생각했다.
-
결국 쓰고 싶었던 건, 나날이 강해지는 손힘에 딕이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데미안의 표정이 추측과는 너무도 다른,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아이의 표정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서로를 보듬어 주는 게 보고싶었는데. 이상한 방법으로 딕에게 응석을 부리는 데미안과, 자신의 선에 한하면 그런 응석을 묵인&받아주는 딕이 보고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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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27
존잘생
요새 다시 나루토 보고 있습니다. 미나토가 나오니까 ^^...
탈덕을 한 건 아닌데 그냥 휴덕기인가 연성도 잘 안되고 보고싶은 것도 쓰고 싶은 것도 없고..
다시 심지를 태울 것들을 찾곤 있지만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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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슨딕] 신부님과 염소
사실 책으로 내려고 했던 거였지만.. 더 이상 안적을 것 같아서 미완으로 올림
슨부님과 인큐딕. 인큐버스가 염소라는 설정이 너무 좋다..
사실 악마가 가지 못하는 곳이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악마나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면 으레 신에게 기대려 성당으로 몰려 들어가지만 그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건 신앙을 공부한, 특히 퇴마를 공부한 신부들이라면 마땅히 알면서도 세간에 알려져선 안되는 비밀스러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은 성당에 마련된 병원에만 가보아도 알 수 있었다. 악마에 씌여 비명을 지르는 많은 환자들. 여리고 어린 소녀부터 시작해 나이가 든 남성까지, 많은 사람들이 흉측하고 괴악한 모습으로 몸을 뒤집으며 가죽끈에 메여 침대에 구속되어있는 그 곳. 그곳에 걸린 거대하고 하얀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악마는 하나도 없었다.
제이슨은 신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스승이 되는 사제와 함께 빙의환자들이 있는 바티칸의 병원에 가본 적이 있다.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보금자리삼아 있었던 성당에서 지내던 10살 남짓한 소녀가 입에 개거품을 물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말들을 내뱉으며 발버둥 쳤을 때, 제이슨은 그녀를 묶어 이송하는 사내들을 따라 스승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그곳은 깨끗하며, 정갈하고, 수녀 출신의 간호사들이 환자를 보살피는 감옥이었다. 악마에 씌인 불쌍한 어린 양들이 악마에게 삼켜진 그 입으로 신을 모욕하고 부르짖는 감옥. 막 그 길에 발을 들였던 어린 제이슨에게 그곳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또 다른 신앙을 심겨주었다.
제이슨이 신앙의 길을 걷게 된 건 비단 믿음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이슨은 신앙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뒷골목 출신의 아이였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선 남을 해하고 얻은 것을 취하며, 서로를 물어뜯어야 살 수 있는 거리의 아이. 그런 아이에게 신이란 자신을 이런 더러운 시궁창에 박아놓은 입에 씹기 좋은 껌밖에 되지 않았다.
제이슨에게도 신의 존재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제이슨은 신을 욕할 시간도 없었다. 뒷거리의 골방에서 몸을 파는 창녀의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나와 태어난 순간부터 온갖 더러운 것들을 보아오고 행해야했던 시궁내 나는 뒷골목의 아이. 자신을 보듬어줘야 할 그 어미에게 조차 사랑은커녕 애물단지 취급에 노역꾼 취급 당하던 아이에게 신은 신경 쓰이지도, 신경 쓸 시간도 없는 머나먼 존재였다. 14살. 창녀였던 그의 어미가 14살이 된 그를 소아성애자들의 은밀한 곳으로 팔아버리고, 맹렬한 반항에 각목으로 후드려 맞아죽을뻔한 그를 그의 스승인 사제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신앙도, 신도, 제이슨에겐 그저 의미 없고 먼 길이일 뿐이었을 것이다.
제이슨을 구해주고, 거두어주고, 가르쳐준 스승은 제이슨이 어릴 적부터 살아온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갖게 된 살기와 악의에 연민을 표했지만 그것들을 높게 샀다. 제이슨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다. 또한 자신이 약자였던 시절을 기억하기에 약자에게는 온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스승을 미소 짓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함께 쌓여온 믿음이 어느 정도 기준치를 넘어 글로 빼곡히 쓰여진 신의 말씀을 그 입으로 자연스레 뱉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쯤, 제이슨은 다시 총을 쥐었다. 첫 숨부터를 시궁창에서 들이쉰 제이슨에게 총은 가호만큼이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이슨이 신부로서의 일들을 배우고, 성령의 말씀을 달달 외어 제 것으로 만들고 있을 즈음. 그의 스승은 성인을 넘기고 20살이 된 그의 곁을 떠나 평생을 찬양해온 신의 곁으로 갔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너무도 슬퍼하기엔 제 스승이 평온한 모습으로 잠들 듯 여행길에 올랐기에 그는 스승의 장례식 후 미련 없이 고담으로 올 수 있었다. 그곳으로 돌아가는 건 제이슨의 손에 ‘다시’ 묵직한 납덩어리를 쥐게 하는데에 크게 일조했다.
고담. 바벨탑처럼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은 건물을 쌓아놓고 그 뒤로는 버려진 사람들을 오물 취급하는 밤의 도시. 돈 많은 부자들의 동네란 말과 동시에 무법천지라 불리는 아이러니한 곳. 자신이 태어나고 버려지고 다시 구출되었던 고향으로 제이슨은 돌아갔다.
바티칸에서 새벽비행기를 타고 그 다음날 낮에 고담에 도착한 제이슨은 성경 외 신부복과 사복이 들어간 짐가방을 들고 자신이 배정된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은 부자들을 위한 휘황찬란한 곳이 아닌, 버려진 자들을 위한 작은 성당이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공원 묘지에 자리잡은 작은 성당. 삐걱거리는 문부터가 옛날, 총격전이라도 있었는지 총구멍이 드문드문 새겨져 있었고, 성당 내부의 부서진 창문은 갈지 않고 노란 테이프로 바람이 드나들 구멍만 메꿔 놓은 것 투성이였다. 낡아 흠이 생기고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얼룩과 먼지가 쌓인 두 열의 나무 의자 사이를 가로지르는 와인빛의 레드카펫은 뭘로 더럽혀진건지 알 수도 없는 이상한 색으로 얼룩져있었다. 모든 환경이 열악에 가까웠고, 좋은 추억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제이슨은 고담에 오길 바란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작은 성당 안에서 8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을 만끽했다. 여전히 희비가 교차하고 밤의 스포트라이트와 총성이 교차하는 더러운 곳이었다.
제이슨은 성당 안에 마련된, 이젠 자신의 집이 될 작은 침실에 짐가방을 내려놓기 위해 홀 -미사실-의 구석에 위치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짧은 복도가 나오고 침실로 추정되는 곳의 문을 열었을 때 나온 것은 먼지가 잔뜩 낀 책상과 마찬가지로 먼지에 뒤덮인 누런 시트의 침대 두 대가 작은 공간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어차피 이 곳을 쓸 사람이라곤 저밖에 없기에 제이슨은 한 침대 위에 짐을 올려두고, 그 안에서 두 자루의 총을 꺼내 품 안에 넣었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이 많았다.
처음 성당을 찾아온 사람들은 신부의 자리가 비어 성당이 폐가처럼 쓸쓸이 무너져갈 때에도 오갔다는 노파가 아닌(그런 노파가 있었단 말은 오던 길에 공원의 작은 공터에서 낡은 공을 차고 있던 아이에게서 들었다. 아이는 제이슨의 신부복 차림을 보고 제이슨이 성당으로 가던 것이라는 걸 추측하곤 얘기를 꺼냈다)후원단체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말끔한 양복차림을 한 두 남녀가 참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로 와 인사를 건네고, 참 고담 사람들답게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남녀는 말을 유창하게 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잘 나가는 기업이 돈 조금씩을 내어 그래도 같은 식구들인 고담의 뒷골목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 등의 후원을 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후원에는 성당 개축을 위한 약간의 지원금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이슨은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성당의 깨진 유리창과 마리아의 로브자락이 날아간 스테인드글라스를 흘끔 봤다. 창문을 갈아야했었는데,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 형제자매님들의 후원은 주님께서도 기쁘게 여기실 겁니다. ”
제이슨은 신부다운 말과 웃음으로 화답하며 그들을 배웅해주었다. 조금 바빠지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
제이슨이 눈을 뜬 곳은 축축하고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낯익은 골목. 시궁쥐가 사람들이 버려놓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고양이의 눈치를 살피던 지저분한 골목이 너무도 낯이 익어 제이슨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마를 짚었다.
‘ 트라우마가 아예 없다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
어디서 나왔을 지 모를, 잘 곳이 없어 맨바닥에 몸을 뉘인 노숙자인지, 아니면 이름 없이 죽어갈 시체인지 모를 것들이 으레 널부러져있곤 하던 그런 골목. 제이슨은 이 골목이 자신이 어릴 적 지독히도 봐왔던 그 골목이란 것을, 그리고 이 모든 게 지독한 악몽이란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고담’에 왔다는 걸 상기할 새도 없이 방치되어있던 성당을 어디서부터 손봐야할지 고민하며 성당과 성당이 위치한 공원의 묘지들을 돌아보느라 하루를 지샌 그였기에 장시간의 비행과 일과로 피곤한 몸을 쾌쾌한 냄새가 나는 낡은 침대 위로 던졌을 때에도 이런 꿈을 꾸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꿈이라고 하기엔 끈적한 밤공기가 피부에 닿는 것 같은 생생한 꿈이었다. 제이슨은 저도 모르게 자연스레 손을 올려 코트 깃을 여몄다. 자신이 까만 신부복 위로 까만 코트를 입고 있다는 것은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위태로이 깜빡거리는 주홍색 가로등 아래에서 함께 번쩍거리며 불빛과 함께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는 벌레들 너머로 보이는 섬광들. 6년이나 지난 옛 기억인데도 고담은 자신의 머릿 속에 이토록 생생하게 구현될 정도로 각인되어있었나보다. 제이슨은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스모그에 가려져 구름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보며 어떻게 깨어날지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고담에 대한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이슨의 어린 시절. 밤의 도시인 고담답게 밤이면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망령처럼 튀어나와 밤거리를 헤매었다. 그건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성당으로 바로 와 고담의 밤거리는 커녕 성당의 낡은 침대 위에 몸을 누이고 있는 그였지만, 그의 생각대로 고담은 한치의 변화도 없었을 거였다. 갱단은 어린아이들을 이용해 마약을 거래했고, 돈을 실은 고무바퀴의 하얀 마차는 늘 약탈자들의 손아귀에서 휘청거렸다. 고담은 밤이 시작이었다. 빨강 파랑으로 빛나는 경찰차들이 화약을 마구 쏘아대는 무법천지가 창녀들이 잠을 깨고 옷을 벗는 밤이 고담의 시작이었다. 그곳에선 많은 아이들이 침묵 속에서 싸늘히 식어갔다.
제이슨은 깜빡거리는 가로등 아래 번지는 하얀 것이 제 입김인 것을 깨닫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비행기에 내렸을 때 제 몸을 에워싸던 새벽의 찬 공기가 지금도 제 몸을 에워싸고 있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생생한 꿈이라. 제이슨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숨을 뱉었다. 입 밖으로 빠져나온 숨이 담배연기처럼 하얗게 피어오르는 모습이 이 어둠 속에서 보기에는 너무도 진하고 선명해서, 그는 다시금 이게 꿈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더럽게 의미 없는 꿈. 너무도 잔잔해 언제 깨어나야할지 타이밍을 잡을 수 없는 그 꿈속에서 하얀 숨을 뱉던 제이슨은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입김 사이로 하얗게 몸을 세운 것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또각
박자 없이 제멋대로 번쩍거리는 가로등이 주홍빛에서 노랗게 점멸했고, 그 아래 서있는 것은 그걸 비웃기라도 하 듯 하얀 털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길게 말려 귀 옆까지 내려온 뿔과 노란 자위 안, 누운 동공이 그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그림자처럼 불빛의 깜빡임을 따라 점멸했다 나타나길 반복하는 그것을 응시했다. 또각. 낮게 든 발이 바닥에 닿으며 낸 소리와 함께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 염소……? ”
제이슨은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보이는 것은 본디 무슨 색이었는지 알 수 없는 낡은 베이지색 천장이었다.
제이슨은 동이 트기 전에 깨었지만 다시 잠들진 않았다. 그는 말끔한 신부복 차림으로 성당을 정리하다 매번 들린다는 그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제이슨에게 젊고 멋진 신부님이 왔다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제이슨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 인사에 응했다. 노파의 손은 세월로 떼가 덕지덕지 묻은 주름진 손이었지만 따스했다. 마치 스승을 생각나게 하는 손에 제이슨은 약간의 향수를 느끼며 자신의 스승을 떠올렸다.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산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건 스승을 그리워하는 그리움보다는 떠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에 가까워 제이슨은 조금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한적한 성당의 마당에서 다시 빗자루를 들었다.
성당은 조용했다. 묘비가 그득한 공원을 지나 도심을 향해 가면 시끌벅적해지는 것과는 달리 공원 한 구석에 마련된 성당이 부산스러울 일은 없었다.
그 시끄러운 도심 속에서 총을 맞고 죽거나, 칼부림이 나 죽거나, 어찌됐던 누군가의 손에 죽어 싸늘하게 돌아온 식구를 초라한 관에 담아 공원의 한쪽 아래 묻어놓을 때에도 성당은 조용했다.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초라하게 남은 성당에 신부 한명과 열도 안되는 유가족들이 치루는 장례였다. 대부분의 장례가 그런 식이었다. 마치 꿈에서 보는 것처럼. 과하게 생략이 된 묘사를 쓰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많은 것이 허술하고 많은 것이 빠져있지만 그게 다 인 장례식의 연속이었다.
제이슨은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문을 읊으며 육신 잃은 영혼이 주의 세계에 바르게 가길 기도하면서도 이곳은 지나치게 조용하단 생각을 했다. 차갑게 식은 아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 비싼 정장을 수의로 입혀주며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입에서 터지는 흐느낌도 조용했다. 제이슨은 그게, 자신이 알고 자라왔던 고담과 한톨도 다름이 없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관에 누운 아이의 이름은 ‘존 맥거드’라는 흔한 이름이었다. 까만 피부에 깔끔하게 삭발한 머리가 둥그스런 두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13살의 아이.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나온 다리 밑의 작은 간이 농구장에서 갑작스런 총격전에 휘말려 사망한 불쌍한 아이였다. 아이의 부모는 범인을 찾는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번이고 갱과 마약쟁이들의 자잘한 신경전으로 총격전이 밥 먹듯 일어나는 참 살기 좋은 동네가 고담이었으니까. 존의 부모도, 존의 친구들도, 존의 가슴과 식도에 한 발씩 구멍을 낸 살인마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따윈 갖고 있지 않았다.
제이슨은 아이의 장례식에 아이의 영혼이 주님의 길로 인도되길 기도하며 자신의 14살을 떠올렸다. 제 스승의 구제가 없었더라면 자신 역시 똑같이 이 낡은 성당에서, 아니다. 제이슨은 정정했다. 이 아이가 이렇게 자기 관을 가질 수 있던 것도 다 관을 짜줄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럴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약에 찌들어 주름이 한껏 진 얼굴로, 작은 아이에 대한 배려도 없이 방 안을 담배 연기로 메우던 자신의 어미를 떠올라, 그는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이 저 나이에 죽었더라면, 아마 그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그저 흩어져 사라졌을 것이다.
‘ 이런 생각은 남의 인도를 해주며 할 만한 게 아니지 ’
제이슨은 차가운 땅으로 몸을 누이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킨 아이를 바라보는 유가족들의 작은 등을 보며 생각했다. 흐느끼는 등. 까만 정장. 회색 묘비에 새로 적힌 이름. 처음과 끝을 알려주는 숫자가 적힌 비석을 보며 별다른 의미 없이 유가족들을 배경처럼 보던 제이슨의 눈에 다른 누군가가 잡혔다.
땅에 묻힌 아이의, 존의 조문객들과는 다른 모습의 사내가 검은 정장을 입고 떨어져 그들을 보고 있었다.
말끔한 양복 차림에 훤칠한 키와 미형의 외모가 돋보이는 사내. 여자들이 꽤 매달릴 것 같은 도련님같은 모습을 한 남자는 양복 주머니에 양 손을 끼우고 그들을 보고 있었다. 누굴까. 검은 정장의 사내는 마치 미술품을 보러 온 관람객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서있었다.
그가 이곳에 왜 왔는지 알 권리도, 알 생각도 없던 제이슨은 발걸음을 돌려 성당으로 돌아가려했다. 그런 제이슨을 잡은 건 고개를 돌리기 전, 먼저 고개를 돌려 제이슨과 눈을 마주한 사내가 지은 눈웃음이었다. 잡지에 한 번씩 실리는 관광명소의 맑고 깊은 바다를 닮은 푸른 눈이 눈꼬리가 휘어지는대로 그 모습을 수줍게 감추는 모습을 보며 제이슨은 잠시 멈칫했던 몸을 돌렸다. 그는, 그저 사내가 별 다른 이유 없이(있다해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곳을 찾아왔으리라 단정지었다. 제이슨은 그 남자를 쉽게 신경에 담았던 만큼 쉽게 잊어버렸다.
***
장대비가 내렸다. 거칠게 내리는 비가 어찌나 거센지 새로 간 유리창을 뚫을 기세로 바람과 함께 몸을 부딪혀와, 조용한 성당이 음산한 소음으로 가득 찼다.
습기가 적포도주같은 붉은 카펫에 눅눅하게 스며들어 구두 아래 밟히는 카펫이 물에 적신 가죽처럼 무거운 것을 느끼며 제이슨은 높은 천장에서 방울 방울이 새어 떨어지는 물방울 아래 양동이를 놓았다. 사람을 불러 지붕을 고치지 않는다면 비가 올 때 마다 카페트대신 떨어지는 물길을 받을 양동이를 바닥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성당은 방치 아닌 방치로 섬세한 손길을 타지 못해 망가진 곳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제이슨은 그게 썩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부분이 편안하다. 잘 꾸며지고 갖출 것 다 갖춘 곳은 저에게 맞지 않았다. 이곳에 오는 이들은 신에게 기도하기 위해서지, 화려한 도시의 변두리에 밀려나 낡아가고 있는 작은 성당에 관광하러 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신도들이 앉아 주님에게 진심을 기리며 미사할 작은 공간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허름했어도 상관 없었으리라 제이슨은 생각했다.
오래된 천장에 난 구멍 사이로, 그가 오기 전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새어들어오던 빗줄기는 양동이 데어줄 사람 하나 없이 그대로 카페트 위에 제 몸을 퍼트렸을 것이다. 카페트엔 오래된 습기가 꿉꿉하게 눌러붙은 냄새가 났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이 심해졌다. 깨지지 않은 스테인드글라스와 걸쇠까지 간 새 창문 덕분에 초가을의 궂은비가 데려온 찬바람이 성당 내부를 제 집마냥 돌아다니는 일은 적어졌지만, 날이 갈수록 쌀쌀해지는 공기가 드러난 손등으로 와닿았다. 난로를 하나 들여야하나. 낡은 성당만큼이나 세월에 휘둘려 성한 곳이 없는 나이 든 신자들을 생각하며 제이슨은 이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공간을 작게나마 덥혀 줄 난로에 대해 생각했다. 제 스승이 집 안에 들여 겨울이 찾아오면 곧잘 창고에서 내어오던 기름으로 떼는 난로. 그 난로 앞에 앉아 언 몸을 녹이던 그 때의 기억은 귓가를 거세게 때리는 빗소리에 다시 추억 속으로 잠겨 사라졌다.
찬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어오며 닫힌 문 너머로 웅웅거리던 빗소리가 함께 밀려들어왔다. 제이슨은 고개를 돌려 비스듬히 열린 성당 문을 봤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먹구름으로 새벽처럼 어푸스름한 하늘과 빗줄기를 등지고 누군가가 서있었다.
“ ……들어가도 될까요? ”
검은 정장을 입은 몸을 보기에도 묵직하게 적신 사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실제처럼 선명하지만, 꿈에서 본 것 마냥 헛것처럼 흐렸던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현실적으로 들려 제이슨은 잠시 멈칫했다, 저기- 하고 운을 띄우는 그에 정신을 차렸다. 사내가 서있는 문 안으로 바람과 함께 빗줄기까지 들어와 성당 안을 적시고 있었다.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안으로 들였다.
제이슨은 사내에게 마른 수건을 건넸다. 사내는 머리까지 푹 젖은, 젖었다기보단 절여있다고 하는 게 알맞을 것 같은 모습으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홀의 의자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사내의 손끝이 창백하게 얼어있었다. 아마 밖에서 장대비를 그대로 맞은 탓이겠지.
“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
제이슨의 말에 사내는 머리 위에 덮어씌워져 내려온 수건의 끝으로 얼굴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눈은, 그 날 묘지에서 보았던 푸른 눈과 한치도 다르지 않았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를 뒤로 두고 그가 간 곳은 홀의 구석에 있는 문 안이었다. 문을 열면 나오는 작은 복도에는 얼마 걷지 않아도 방과 작은 응접실로 통하는 문 그리고 살림을 위한 부엌이 나왔다.
제이슨은 가스레인지와 싱크대, 테이블이 조촐하게 있는 부엌의 찬장에서 커피포드를 꺼냈다. 전에 후원이라며 성당을 수리하는데 도움을 준 단체에서 함께 가져다준 생필품들 중 하나였다. 잘 쓰지 않아 먼지가 낀 콘센트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 먼지를 대충 제거한 제이슨은 작게 기침하며 커피포드의 콘센트를 꽂았다. 얼마 안 쓴 새것이란 티가 나듯 깨끗한 커피포트 안에 물을 담고, 끓여지는 동안 찬장 앞에서 고민하던 제이슨이 꺼낸 것은 녹차 티팩이었다. 녹차는 기호를 모르는 사람에게 주기에 가장 무난한 차였다.
찬장에는 많은 것이 있었다. 레몬차와 녹차, 커피에 코코아까지. 대부분이 그가 직접 사기보단 신도들이 준 것들이었다. 조용한 성당이라 해도 이곳을 드나드는 신도들이 하나씩 주고 가는 물건들을 받아 한곳에 두니 꽤 많은 양이 되었다. 제이슨은 이것들을 자신이 모두 마시기보다 오늘처럼 갑작스런 손님이나, 날이 추운 날에 들리는 신도들을 위해 꺼내곤 했다. 오히려 제이슨이 이 차들을 끓여먹는 일은 적었다.
탁, 소리와 함께 김이 새어나오는 포트의 끓는 물은 물기를 빼느라 뒤집혀있던 하얀 머그컵으로 쏟아졌다. 끓는 물이 하얀 김을 토해내며 머그컵으로 쏟아졌고, 포장을 벗고 속을 드러낸 티팩은 뜨거운 물 안으로 들어가 향과 색을 우러나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머그컵의 손잡이를 쥐었다. 머그컵의 몸통에 닿은 손가락에 뜨거운 물의 열기가 녹차의 향처럼 함께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그는 복도를 되돌아가려했다. 잔뜩 젖은 사내의 몸이 돌연 듯 생각난 건 방 앞을 지나치기 전이었다. 제이슨은 침실로 쓰는 제 방문 앞에 잠시 서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부자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침대와 짐가방이 올려져있는 침대 사이로 들어선 제이슨은 컵을 쥐지 않은 빈손으로 담요 하나를 꺼내들었다. 쾌쾌한 먼지냄새가 비냄새에 섞여 코를 자극했지만, 비에 젖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 보다는 나을 듯 싶었다.
제이슨이 홀로 돌아왔을 때에도 사내는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처럼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쓸다가 목에 흐른 물기를 닦고 있었다. 사내의 젖은 자켓만큼이나 젖은 수건으로 아직도 바닥을 물로 적시고 있는 몸을 닦는 건 더 이상 소용없는 짓 같았다. 제이슨은 그에게 다가가 머그컵을 건네었다. 신부님? 짧은 물음과 함께 고개를 든 사내는 미소와 함께 추위에 잘게 떨리는 손길로 머그컵을 받았다. 사내는 다시금 멋쩍게 웃었다.
“ 죄송해요. 저 때문에 바닥에 홍수가 났네요 ”
농담 어린 사과를 하며 사내는 어린아이처럼 입김으로 녹차를 식히고 입술을 대었다. 호록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만족스런 탄성이 흘러나왔다. 듣는 사람도 언 몸이 녹는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탄성을 짧게 뱉은 사내는 참 자연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 구름이 낀단 소린 들었는데, 비가 이렇게 거세게 내릴 줄은 몰랐어요. 완전 날벼락이죠. 신부님 아니었으면 저도 내일 여기 묻힐 뻔 했네요 ”
지은 미소만큼이나 웃음기 섞인 말투로 농담을 던진 사내는 제이슨의 무덤덤한 반응에 꽤 멋쩍은 반응을 보이며 차를 작게 들이켰다. 뜨거운 차에 적은 양을 삼킴에도 불구하고 비에 젖어 차가워진 몸 안으로 온기가 들어가는 것에 생리적으로 크게 삼킨 사내의 침성이 웅웅거리는 빗소리 속에서도 또렷이 들렸고, 뒤이어 들려오는 요란한 재채기 소리에 제이슨은 한 팔에 끼고 있던 담요를 건넸다.
“ 감사합니다 ”
사내는 건네받은 담요를 무릎에 얹히고 옆자리에 머그컵을 내려놓은 후 젖어 달라붙은 자켓을 벗었다. 정말이지, 젖었다기보단 빗물에 절였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 자켓은 본래 색보다 더 검게 변한 몸으로 하얀 와이셔츠 위에 끈덕지게 달라붙어있었다. 자켓을 다 벗은 사내는 피부에 더욱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찬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켓을 벗은 몸 위로 와이셔츠가 불투명한 하얀색으로 그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사내는 무릎에 얹힌 담요를 펼쳐 이불처럼 어깨에 두른 후 다시 머그컵을 들었다. 어느 정도 식은 건지 양손으로 머그컵을 쥔 사내는 만족스런 한숨을 내뱉곤 녹차를 몇 모금 더 들이켰다. 젖은 자켓이 놓여진 의자 밑으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형제님. 제이슨은 사내의 앞에 서서 침묵을 일관하던 입을 열었다.
“ 필요하시다면 우산 빌려드리겠습니다 ”
“ 아 ”
사내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제이슨을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뜸을 들이는 모양새가 무언가 부탁하는 사람의 모양새여서 제이슨은 그의 말을 기다려주었다. 그는 조금 미안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제이슨을 바라봤다.
“ 비 그칠 때까지만 있어도 될까요? ”
제이슨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가 보기에도 젖은 사람을 내보내기에는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제이슨에 사내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웃어보였다. 사내의 머리카락에서 채 마르지 않은 물기가 방울져 머그컵의 녹차 안으로 떨어졌다. 아는지, 아니면 개의치 않아하는지 사내는 뒤늦은 자기소개를 이어했다.
“ 저는 리차드 그레이슨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딕이라고 불러주세요 ”
사내는, 그러니까 딕은 뜸들이며 부탁한 것치고는 꽤 뻔뻔하게 행동했다. 온수기가 달린 작은 욕실에서 간단한 샤워와 함께 몸을 덥힌 그는 제이슨의 옷을 빌렸다. 잠옷이나 편안하게 입을 용도로 들고 온 검정색 티와 츄리닝이 갑작스런 손님의 몸에는 조금 컸다. 딕은 고맙단 말을 꼬박 꼬박했고, 그가 욕실에 들어가 나올 때 까지 제이슨은 홀에 떨어진 물을 치우고 있었다. 딕이 젖은 구두대신 천으로 된 슬리퍼를 신고 나왔을 땐 한참 제이슨이 뒷정리를 끝낸 뒤였다. 탁탁거리며 움직일 때 마다 발바닥과 떨어져 바닥을 찰싹 쳐대는 슬리퍼 소리를 내며 다가온 딕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그칠 기세도 없이 비는 여전히 장대처럼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억수처럼 내리는 빗속을 뚫고 변두리까지 찾아올 사람은 없었기에(그처럼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운 손님이 아닌 이상), 거의 하루 종일이라 해도 될 법한 시간을 딕은 제이슨을 따라 성당을 정리하는데 썼다. 비도 피하게 해주시고, 옷도 빌려주셨는데 당연하죠. 화사하게 웃으며 잡일을 도와주는 딕을 제이슨은 따로 말리진 않았다. 성당에서 하는 일이란 똑같았다. 내부를 청소하고, 평소 같았으면 마당도 쓸었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홀에 앉아 혹시 올지 모르는 신도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며 신에게 기도한다. 끼니를 채우면 미사시간도 가져야했다. 어찌보면 한가하지만, 착실한 생활이었다.
아침부터 내려 한낮에 손님을 들게 한 비는 점심때가 되자 위세가 줄어들었다. 더 이상 창문을 뚫을 기세로 쳐대는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장대비의 손님은 자신이 쫄딱 젖어 들어온 그 문 앞에 서있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끽소리 하나 없이 열려있는 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맞고 있었다. 까만 뒤통수가 하얗게 타며 서있는 모습이 꼭 문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새끼 고양이 같아 제이슨은 한참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전등을 켜놓아도 먹구름에 우울한 빛으로 뭉그러져있던 성당 안을 스테인드글라스가 오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사람의 손을 타도 사라지지 않는 먼지들이 창문의 햇빛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공중을 활개쳤다. 형제님, 식사는? 그것을 물으려 뒤돌았을 때, 사내는 증발한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들이닥쳤을 때처럼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제이슨은 딕을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곳은 변두리라고는 하나 고담이었다. 각자의 말 못할 사정(그것도 대부분이 구린)이 얽히고설킨 곳에서 사람들이 생존해가는 곳이었다. 그가 제이슨의 몇 없는 사복 중 두 벌을 입고 갔으나, 제이슨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일에 무심할 만큼 바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화낼 만큼 속이 좁지도 않았다. 제 옷을 입고 갔다고 해서 어디 갔을지도 모를 그를 찾으러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비는 진즉에 그쳤고, 밤은 빨리 왔다. 처음 그를 봤던 날처럼 딕 그레이슨은 시간에 따라 쌓여가는 기억들에 묻혀 아득해질 거였다. 스쳐지나가는 인간관계라는 게 보통 그랬으니까. 묘하게 눈길을 끄는 손님. 그것뿐이었다. 아마 한 어린 신도의 이야기만 아니었다면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 비요? ”
제이슨이 성당에 오고 난 뒤부터 곧잘 어머니와 이곳에 찾아오던 레건은 활기찬 성격에 비해 조금만 날씨가 틀리면 콧물과 부운 목을 달고 다니는 12살짜리 만성 감기 환자였다. 이제 어느 정도 얼굴도 말도 터서 신부님, 신부님에서 기어이 형, 형 거리며 미사일이 아니라도 찾아오는 아이가 걱정하는 제 어미의 말도 듣지 않고 흥미 있는 일만 있다고 하면 비가와도 뛰쳐나가는 걸 아는지라 물었던 제이슨의 안부는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찡그리는 얼굴과 함께 그를 이상한 방향으로 안내했다.
“ 최근에 비 온 적 없는데요? ”
“ 어제 비가 왔잖아. 얼마나 사나운지 창문이 깨지려 할 정도였다고 ”
제이슨은 장난치지 말라고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아줄 것 같은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지만, 레건은 오히려 저가 더 당황스럽단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 진짜에요! 비는커녕, 햇빛만 쨍쨍했는데! 그래서 필이랑 축구까지 했는데! ”
“ 잠깐. 지금이 몇 일이야? ”
“ ? 11월 2일이요. ”
제이슨은 오른손으로 제 입가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눈썹 사이가 모이며 패인 주름에 아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제이슨은 아이의 어깨를 짧게 토닥여주고는 급히 성당 안, 미사실의 구석에 있는 복도로 들어갔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새벽 같던 한낮. 폭우. 그 속에 찾아온 손님. 딕 그레이슨. 제이슨은 제 방으로 들어갔다. 두 개의 침대. 그 옆에 있는 옷장의 문을 연 제이슨은 오늘 아침도 신부복을 꺼냈던 그 옷장 아래 입을 다물고 있는 가방을 열었다. 젖은 정장에 빌려준 그 옷들. 티와 바지는 건드린 흔적 없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에게 준 담요도, 옷도, 모든 게 그대로였다.
제이슨이 다음으로 들린 곳은 부엌이었다. 제이슨은 찬장을 열었다. 그에게 타준 녹차 티백은 건드린 흔적 없이 상자가 고이 입 다물려 있었다. 뜨거운 물이 펄펄 끓었던 포트도 구석진 제 자리 안에서 몸을 누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그가 왔을 때 제가 건드린 흔적이 없었다. 제이슨은 제 기억이 조작되기라도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만화 같은 얘기. 그렇다고 쉽사리 무시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덩그러니 놓여지게 된 제이슨은 부엌에 선 채 미간만 더 움푹 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가 ‘낮’이란 시간대에서 벗어 나는데에는 의외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이슨은 작은 스테인리스 식기선반에 뒤집혀져있는 물기 마른 식기들로 눈을 돌렸다. 가지런히 몸을 눕히고 있는 식기들을 보며 제이슨은 묘한 안도감과 커지는 의문 속에서 갈팡질팡했다. 식기선반에는 그가 저녁식사를 할 때 쓰고 씻어 엎어놓은 식기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일일이 접시를 어느 위치에 뒀는지 기억할 정도로 강박증 환자처럼 굴진 않았지만, 어제 저녁에 쓴 컵을 접시 옆에 뒤집어 놨다는 걸 기억 못할 정도로 늙지도 않았다. 식기선반의 아래로 갔다 위로 갔다를 반복하는 컵이 어제 저녁엔 몸을 씻은 후 식기선반 2층 자리에 제 몸을 얹혀놓았다고 증인인양 대답하며 가지런히 있는 걸 보며 제이슨은 컵의 손잡기를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유리 손잡이가 그가 어제 하루를 모조리 잃은 건 아니라고 증명하는 것들 중 하나였다.
‘ 그렇다고 하루가 다 날아간 것도 아닌데…… ’
제이슨은 그 자리에 서서 애꿎은 컵만 봤다. 그가 이 어처구니없는 -초자연적인 상황에 놓여 할 수 있는 건 그저 덩그러니 놓여 의문에 의문을 생각 위로 더하다가 마지막엔 하느님을 찾는 것뿐이었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던 그 날은 그를 제외하곤 찾아온 손님도 없었기에 그와 있었던 시간대를 증명할 사람도 없었다. 제이슨은 비가 오지 않았냔 말을 성당에 찾아 온 신도 세 명에게 더 물었고, 같은 대답을 들은 후에야 이 문제에 대해선 제 안에 스스로 묻어야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정확히 3일 만에 박살났다. 용의자가 찾아온 것이다.
그 날은 비도 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짓궂은 날씨였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밤이었을 뿐. 제이슨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 뒤로 이른 저녁 기도를 마친 후 성당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혹시나 밤에 찾아와 비어있는 성당의 문을 열고 은촛대라도 훔쳐갈 요량으로 온 도둑이 있을까 성당 문 역시 굳게 잠겨져 있었기에 제이슨은 익숙한 혼자만의 밤을 보내고 있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11월의 갓 시작된 겨울바람이 버릇 없는 아이처럼 자는 사람 방 창문을 노크했고, 잎이 다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마른 나뭇가지는 그런 아이를 말리는 힘없는 어미의 팔처럼 흔들거렸다. 제이슨은 고요함을 자장가 삼아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순응하며 수마에게 몸을 맡겼다. 불 없이 어두운 방보다 더욱 어두워지는 시야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자신을 놓았을 때, 그는 성당 안에 서있었다.
제이슨은 자신이 순간 정신을 놓은 줄만 알았다. 기분 좋게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어둠이 들이닥치던 그 순간은 현기증과 비슷하게 핑- 하고 도는 느낌이어서, 제이슨은 자신이 잠이 든 게 아니라 저녁 기도를 하고 일어난 참이었고, 그 순간 현기증을 느꼈으며, 그걸 자기 전과 착각한 건 아닐까 하는 앞뒤 맞지 않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깨달았다. 환한 성당 안, 창문은 어둠이 뒤덮여있었다. 제이슨은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간 어깨를 축 누그러트리며 오른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건 꿈이었다. 꼭 현실 같은 꿈. 맙소사.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용의자는 나타났다.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건 작은 동물의 굽이 내는 소리와 비슷했는데, 정작 들어온 것은 딕 그레이슨이었다. 검은 머리에 까만 정장을 입고 온 그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제이슨은 이마를 짚은 오른 손바닥에서 제 미간이 꿈틀거리는 걸 느끼며(느껴졌다. 아주 현실적으로. 꿈이라고 치기엔 지나칠 정도로) 손을 치우고 고개를 들었다. 오른 손이 시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허공에서 멈추었고, 오른 손 위에는 그가 문을 등지고 서있었다. 굽 소리는 그의 구두굽 소리인 듯 했다.
딕은 싱그럽게 웃으며 그를 반기다가, 제이슨의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보고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딕은 바깥바람이 춥다는 듯 저가 들어온 문을 닫았고, 끼익거리는 소음과 함께 닫힌 문은 완벽한 밀실을 만들어냈다. 그 안에는 바람 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딕은 쇼핑백을 머리께로 들어 흔들며 말했다.
“ 빌린 옷을 돌려드리러 왔는데요…. ”
딕은 저가 말하고도 참 요상한 말이었다는 듯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가 제이슨을 보고 웃었다. 멋쩍은 웃음에는 ‘자, 그럼 이제 어떻게 설명 드릴까요?’ 라는 물음도 포함되어있어 제이슨은 입을 벌렸다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다물었다. 무얼 물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꿈입니까? 이게 꿈이라면 왜 이렇게 현실적인 겁니까? 당신은 왜 나오고? 그 전에 폭풍우 온 날도 꿈이었습니까? 제이슨은 그리 수다스러운 편이 아니었고, 그는 이 말들을 어떤 순서로 나열해서 어떻게 내뱉어야할지 고민하다가 가장 최적의 단어를 찾았다. 제이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찌푸린 인상이 꼭 하품하는 사자 같았다.
“ 어떻게…… ”
딕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들고 있는 하얀 쇼핑백이 그의 손에 들린 붉은 끈에 달려 몸을 휘적거리며 반사된 빛으로 몸을 뽐냈다. 딕은 파란 눈을 위로 한 바퀴 굴렸고, 팔짱을 꼈다. 이건 필요 없겠네요. 말이 끝남과 함께 반짝거리던 흰 광택이 사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 이게 꿈이냐구요? 꿈이죠 ”
딕은 우스꽝스럽게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그 표정은 과장된 심통 난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 폭풍우 치던 밤도 꿈이었어요. 신부님이 이렇게 일찍 알아챌 줄은 몰랐는데… ”
딕은 정성 들인 장난을 단박에 알아차린 친구를 보고 실망하는 10대 소년 같은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제이슨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여전히 하품하고 있는 사자 같은 인상으로 딕을 바라봤고, 딕은 그런 제이슨을 보며 마른 세수를 하다 뒤로 한 걸음 옮겼다. 또각거리는 굽소리가 성당 바닥을 치며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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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4
울온도 끝났고, 지금은 데드풀 더 게임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자꾸 실수하니까 결국 짜증내면서 자기가 게임 스킵해버리는 데드풀이 너무 웃겨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플레이어! 부르면서 자꾸 말거는 것도 재밌어서, 이런 스릴러류를 잘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겁 안먹고 하고 있습니다
계속 말걸어줘서 넘 고맙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임 하는 내내 데드풀한테 푹 빠질 것 같네요.. 케이블한테도요. 뎀잍 웨이드! 하는 케이블 말투랑 목소리가 너무 좋아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막혀서......ㅎㅏ... 데드풀의 힐링팩터로도 감당할 수 없는 내 발컨.....
곧 먼 곳으로 가야해서 한달 넘게 노트북을 못만질텐데 그러기 전에 올클리어 하고싶은데 걱정입니다.. 덷풀 미안해 8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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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네 왔다네 책이 왔다네
인쇄소에서 책이 왔습니다 ㅎㅎ
원고가 이상이 있었는지 쪽수가 왼쪽으로 다 밀린 거ㅠㅠ빼면 만족스러운 책이에요!
책값은 3500원이 될 것 같네요 ㅎㅎㅎㅎㅎㅎ 아 드디어 가기만 하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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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반/뎀딕] 짤글
(1)
데미안은 늘 짓고 있는 표정만큼이나 무뚝뚝하고 사나웠지만, 적어도 동생의 서툰 넥타이 매김을 바라만 보고 있진 않았다. 작은 서커스보이. 새의 이름을 달고 천막 안을 날아다니던 작은 새가 어린아이용 정장을 입으면, 보타이를 매어주는 건 자연스럽게 어미의 몫이 되어야했다. 데미안은 혀를 차며 딕을 불렀다. 한참 목에 매인 작은 리본과 씨름을 하던 딕은 손가락에 얽힌 보타이끈을 풀지도 않은 채 강아지처럼 데미안에게로 달려왔다.
" 이런 것쯤은 혼자 할 줄 알아야 될 거 아냐."
짓궂은 말. 데미안은 키차이가 심한 딕을 위해 자세까지 낮추어 주며 딕의 꼬인 보타이로 손을 뻗었다. 딕은 줄에 얽힌 손을 빼고 아래로 내렸다. 데미안의 까만 머리카락과 그 아래 패여진 미간. 딕은 그 미간이 한 때 서재에 들어가 봤던 책장 안의 두꺼운 책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데미안은 미간에 무언갈 꽂고 다니는 건 아닐까? 떨어트릴까봐 저렇게 찌푸리고 있는거야.
참으로 아이다운 생각을 하며 딕은 자신의 목에서 손을 떼는 데미안을 봤다. 낮춘 자세를 다시 꼿꼿이 세우는 데미안이 장승처럼 높아져서, 딕은 데미안을 솜털이 보송한 뒷목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꺾으며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딕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신이 묶어준 보타이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을 보는지는 높아 알 수 없었지만 딕은 웃었다.
고마워, 데미안.
데미안은 별 다른 말 없이 혀만 찼다.
(2)
딕은 데미안의 손길이 좋았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데미안은 딕이 곧잘 제 일을 잘 하고나면 그 큰손으로 머리를 쓰담어주곤 했다. 딕은 데미안의 손길에서 향수를 느꼈다. 자신의 머리를 쓰담어주던 손길은 아버지의 손과 비슷했다.
궂은 일로 굳은살이 그득한 투박한 손. 두껍고 긴 손가락이 제 머리 위를 간지럽힐때면 딕은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데미안의 손에 딕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 아버지에 대한 향수. 자신의 양아버지와 닮은 손.
길쭉하고 커다란 손. 큰 형의 손. 딕은 검은 장갑이 벗겨진 데미안의 검지를 답싹 잡았다. 굳은 살은 데미안 못지 않게 있지만, 그에 비하면 아직 한참 세월이 덜 스쳐간 작은 아이의 손이 굵은 손가락을 잡았을 때 데미안의 험상궂은 얼굴은 길쭉하고 커다란 손. 큰 형의 손. 딕은 검은 장갑이 벗겨진 데미안의 검 손가락을 답싹 잡았다. 굳은살은 데미안 못지 않게 있지만, 그에 비하면 아직 한참 세월이 덜 스쳐간 작은 아이의 손이 굵은 손가락을 잡았을 때 데미안의 험상궂은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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