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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갤] 피터 퀼. 외로움
무비버스
피터 퀼은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이었다. 애정은 크지만 주어지는 시간이 적어 그를 더욱 목마르게 했던 어머니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를 잃자마자 세상보다 넓은 우주로 내던져진 것이 트라우마를 준 것인지 그 시발점을 알진 못해도, 그는 외로움으로 속에 구덩이를 파며 살아왔다.
갑자기 끌어올려진 우주의 광활함에 막히는 숨이 간신히 트이고, 어둠 속에서 형형색색 빛나는 별들이 눈에 익을 때쯤 키도 몸도, 담은 지식도 꽤 자란 퀼이 외로움을 달래기위해 찾은 것은 여자였다. 종족과 상관없이 외로울 때면, 퀼은 비에 젖은 강아지 같은 얼굴로 바에 나가 제 밤을 어루만져줄 여자들을 찾았다. 실없는 농담에 추파를 담아 던지며 옆자리에 스리슬쩍 앉아 헤프게 구는 주제에 순하게 내려간 눈꼬리 안에 자리한 헤이즐 눈동자가 어린아이 같은 갈증과 외로움을 담은 채 자신을 바라보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에게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퀼은 그렇게 나날이 바뀌는 온기로 외로움을 채워왔다. 그게 퀼에겐 사무치게 외로운 날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밀라노의 밤은 조용했다. 밤낮의 구분 없이 눈부시도록 환한 우주 속을 떠다니는 비행선 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퀼은 그 고요에 놀란 사람처럼 눈을 번쩍 떴다. 잠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졸음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려 퀼은 어깨를 움찔하며 잠시 멈추어 있다 뒤척이는 소리에 힘을 풀었다. 늘어지는 어깨 너머로 로켓의 잠꼬대가 들려왔다. 퀼은 떠진 눈을 말똥거리며 새까만 벽만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뒤돌아본 밀라노의 안은 그가 혼자 지낼 때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모두 각자의 개성처럼 다양한 포즈로 잠들어 있었다. 자는 모습마저 깨어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끄러운 녀석들을 보며 퀼은 슬쩍 웃다가, 북적거림에 꽤 오랜만에 찾아온 외로움에 사무치는 느낌을 받았다. 한기가 팔뚝을 쓸어내리는 느낌에 퀼은 이불을 조심스레 걷고 소리없이 침대를 벗어났다.
퀼은 가모라를 떠올렸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고운 살결을 생각하며 퀼은 언젠가 자신이 만졌던, 자신을 매만졌던 그녀의 손끝에서 느꼈던 짧은 온기를 머릿속으로 좇았다. 하지만 가모라와 자신은 잠시 생겨난 감정기복에 이불 사이로 파고들 만큼 긴밀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퀼은 가모라의 온기를 머리 밖으로 밀어내려 애썼다. 떠올린 따뜻함을 동아줄처럼 잡아보려 아등바등 거리는 머리가 밖으로 밀어낸 온기의 공간만큼 외로움을 밀고 들어왔다.
베개 옆에 놓여있는 카세트와 헤드폰을 쥔 채 퀼은 귀가 민감한 친구를 위해 발소리를 죽이며 밀라노의 조종석으로 다가갔다. 늘 자신이 앉던 조종석에 앉아 바라본 창 밖에는 훤히 드러난 우주는 모양도 색도 다르지만 너무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눈 앞에 반짝이고 있었다. 퀼은 욘두의 함선에서 처음 보았던 그 우주를 떠올렸다. 눈부시지만, 빛에 파묻혀버릴 것처럼 깊은 감정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퀼은 헤드셋을 머리에 끼웠다. 잠자리에 눌려 곱슬거리는 그의 머리카락을 뭉개트리며 헤드셋은 퀼의 마음을 덮었다. 달칵거리는 작은 소음을 시작으로 퍼지는 노래에 퀼은 눈을 감았다. 눈꺼풀에 가려져 어둠만 가득한 두 눈에는 여전히 우주의 빛이 배려 없이 파고들었다. 퀼은 우주에 던져졌던 그 날의 작은 아이처럼, 울음에 젖어 눈도 코도 벌겋게 달아올랐던 아이처럼 무릎을 껴안으며 큰 몸을 웅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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