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DC/Marvel

[딕/뎀] -

눅군가 2014. 3. 23. 15:58

 잠을 깨우는 것은 창문을 다 가리지 못한 커튼의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도, 일정하게 몸을 흔드는 시계의 초침도 아니었다. 밖은 새벽의 푸른빛으로도 물들지 못한 새까만 밤. 그는 제 위에 올려 진 묵직하다 하기엔 그 무게의 주인에 비해 너무도 가벼운 압박감에 잠을 깬다. 반짝, 전구에 들어온 불빛이 순식간에 어둠을 몰아내 듯 사라져버린 잠결은 멀쩡한 정신만을 남기고 사라지지만 정작 그의 눈이 뜨이는 것은 아침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덜미에 닿는 한 뭉텅이의 냉기에도 몸을 떨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잠이 떠나버린 정신으로 잠에 든 척 연기하며 자신의 위에 기척도, 소리도 없이 저를 누르고 있는 작은 존재를 묵인해 줄 뿐.

이따금 데미안은 공기조차 무겁게 잠든 밤에 딕의 방을 찾아오곤 했다. 그것은 평범한 방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 존재를 감추고 사람의 목덜미에 쇠붙이를 박아 넣는 암살자의 길을 걸어왔던 아이의 발걸음은 얕은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의 움직임보다도 눈에 띄지 않고 고요했다.

데미안은 방으로 와, 숨소리와 뒤척거림으로 침대 위를 배회하는 딕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어둠과, 그림자와 동화된 것 같은 아이의 모습은 그저 그 위에 선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 볼 뿐이었지만, 딕의 드러난 목덜미엔 마치 충동이라도 이는 양 달려들어 찬 공기에 식은 손을 대었다.

크기에 맞지 않게 굳은살과 상처로 여문 손은 점차 힘이 들어가며 그의 목을 조른다. 평소 데미안의 힘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질없는 힘이었지만, 딕은 데미안이 제 위에 올라 온 순간부터 잠에서 깨어나, 그런 아이의 행동을 감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딕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눈을 뜨지도, 이름을 부르지도 - 데미안이 제 기상을 눈치 챌 법한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잠을 연기했다.

데미안 역시 딕의 목 위에 손을 올린 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목을 조를 듯 손 끝에 담기는 힘은 아주 미미한 것이어서, 그 시간이 지나면 잠깐의 붉은 흔적마저 금방 사라져버려, 딕은 데미안의 이런 행동에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데미안은 그렇게 꼿꼿이 서 멈춰있다 온 것처럼 인기척 없이 가버린다. 딕이 눈을 뜨는 건 데미안이 떠나가고 난 뒤로도 한참이 지나서, 밤이 물러나고 새벽이 푸른색으로 감싸일 즈음이었다. 딕은 온기라 부르기엔 너무도 식어있던 손 끝이 머물렀던 목을 매만진다. 뒤늦게 뜨이는 눈엔 그 짧고도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의 순간 동안 데미안이 지을 표정이 그저 추측으로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시작된 일상에서 딕이 그 얘기를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데미안은 매일 찾아오는 게 아니었고, 그 아이의 방에 무슨 일이 있건, 데미안이 딕의 방을 찾아오는 것은 갑작스러웠기에 딕은 지금처럼 별다른 문제없이 넘어간다면 이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데미안이 밤중에 들리는 곳이 자신의 방뿐이란 이유도 있었지만.

데미안은 투덜대고, 신경질이 잦고, 화를 잘 내는 10살 꼬마였지만, 영특하고, 훌륭하며, 천재라는 타이틀도 모자랄 정도로 비범한 아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결여된 감정들 역시 딕과 알프레드의 도움으로 배워가고 있었고, ‘평범한’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는 데미안에게 또 다른 문제를 안겨주고 싶진 않았다. 딕은 개인의 문제를 철저히 방치한 채 썩어문드러지도록 두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민감한 문제를 들추어 그 안의 여린 살을 찌르는 타입도 결코 아니었기에.

데미안은 기본적으로 강한 아이니까, 딕은 데미안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그 일을 내뱉을 때 까지는 언급하지 않자고 생각했다.






-

결국 쓰고 싶었던 건, 나날이 강해지는 손힘에 딕이 눈을 떴을 때 보게 된 데미안의 표정이 추측과는 너무도 다른,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아이의 표정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서로를 보듬어 주는 게 보고싶었는데. 이상한 방법으로 딕에게 응석을 부리는 데미안과, 자신의 선에 한하면 그런 응석을 묵인&받아주는 딕이 보고싶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