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팀뎀] 뎀군의 팀양
모 구신 보는 드ㄹㅏ/마 패러디
팀은 입으로 뱉지 못할 말들에 속앓이를 하며 덩치 좋은 사내의 뒤를 미행했다. 비싸 보이는 수트를 빼입은 단정한 차림새의 남자는 자신의 뒤를 누가 밟고 있는 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시종일관 성난 고양이새끼마냥 미간을 찌푸린 채 제 갈 길을 가고 있어 팀의 속은 더 타들어갈 뿐이었다. 웨인 그룹의 회장 브루스 웨인의 아들이자, 현 웨인 그룹 회장. 사내의 옆에 붙어 자신에게 따라오라며 웃는 얼굴로 다그치는 ‘그’의 말이 맞다면, 미행하는 사실이 들키자마자 묻고 따지지도 않고 감방행이 될 게 분명했다.
학력도 좋아, 성격 좋아, 외모 준수해. 학창 시절 교내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던 팀이 지금은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 은둔형 폐인처럼 창백한 피부에 짙은 다크써클을 눈 밑에 진하게 내리고 있는 이유는 정말이지 웃기고 어처구니없지만 그만큼 소름 돋는 것 때문이었다.
귀신. 큰 사고를 겪은 후부터 팀의 눈에는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얘긴지는 팀 본인도 알고 있었다. 세상에, 귀신을 본다니. 처음에는 사고 후유증으로 생긴 일시적인 환각이나 환청이라고 여겼으나, 점점 더 진해지고 뚜렷해지는 모습들에 팀은 자신이 인생의 정말 크고 끔찍한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걸 깨달았다. 유망하던 대학생의 인생이 전환점을 깨닫자마자 나락으로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귀신들은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팀이 자신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득달같이 달려와 자신이 원하는 걸 요구했다. 죽은 이유만큼이나 다양한 요구와 협박들이 팀의 주위에 들러붙어 아우성대 팀은 집 밖으로 나가는 걸 꺼려하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면 꼭 한 둘은 귀신을 달고 왔다. 집에는 부두교에서 쓰는 자잘한 퇴마 용품이며, 십자가에 성모 마리아상까지- 종교적인 용품과 퇴마 용품들이 벽면을 빼곡이 장식하고 집 안 구석구석에 쌓이기 시작했다. 방은 오컬트 마니아가 봐도 오컬트 마니아라고 인정할 것 같은 분위기로 칠해지고 있었고, 방이 이상한 잡동사니들로 치장되는 만큼 꽤 밝았던 팀의 성격도 음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이 아예 나가지 않고 살 순 없는 노릇이라고, 팀은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가게에 가기위해 가방을 챙겼다. 지하상가에 자리 잡은 가게로 간다는 건 그만큼 곤혹스러운 일이었으나, 큰 사고에 심한 후유증(주변 사람들은 후유증이라고 했다. 하긴, 후유증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을 겪고 있는 아들에 마음이 많이 상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예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팀은 무거운 마음으로 가방을 맸다.
가게가 있는 지하상가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 팀은 해당 역에 내리고 나서야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백화점이란 단어가 여러번 나왔던 이유를 알게 됐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계단을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건 거대한 말 조각상 아래로 쏟아지는 물줄기였다. 상아색의 거대한 분수와 은은한 빛의 타일들이 벽에 쫙 깔려있었고, 그 옆으론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와 입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는 지하상가로 바로 들어가는 길에 백화점 입구가 생긴 것에 의아하며 걸음을 멈춘 팀은 저곳으로 들어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백화점이 지하상가의 부지를 일부분 사들여 공간을 차지했을 뿐, 지하상가로 가는 길은 백화점의 일부만 가로지르면 그대로 나온다는 걸 공지사항처럼 붙여놓은 표지에 한숨 쉬며 주춤 주춤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점심시간도 퇴근시간도 아닌 어중간한 낮 시간대여서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백화점에선 새로 만든 건물 냄새가 물씬 났다. 비싸보이는 전시품들 만큼이나 고급스럽게 꾸며진 백화점 내부를 소심한 견학생마냥 둘러보며 갈 길을 가던 팀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형체들이 한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는 걸 깨닫곤 위축된 모습으로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고 앞만 보고 향해 걸었다. 이대로만 쭉 간다면. 아무 탈 없이 누가 들러붙는 일 없지 가게만 금방 갈 수 있다면- 이란 마음으로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내지르던 팀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벽과 부딪힐 뻔 했다.
“ 뭐야. ”
다행히 부딪히진 않았지만 팀을 인식한 사내는 짜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목소리로 말했고, 그에 고개를 든 팀은 자신보다 키가 조금 더 큰, 훤칠한 외모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꼭 고양이가 하악질하며 생긴 주둥이 주름처럼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사내의 표정에는 짜증이 만연하게 묻어있어 팀은 기분이 확 상하는 걸 느꼈지만 추돌사고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걸 알고 사과를 하려다 멈칫했다.
‘ 안 돼...! ’
쯧. 혀를 차고 자신을 비켜가는 사내가 있던 자리를 보며 팀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집어 삼켜야했다. 안 돼. 사내에게 붙어있던 게 분명해 보이는, 송장같이 새파란 남자가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딕 그레이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 - 그러니까 귀신의 모습은 비현실적일 만큼 창백하고, 잘 보면 뒤가 비쳐보인다는 걸 제외하곤 다른 귀신들과는 달리 흉측하지 않았다. 귀신들은 자기가 죽을 때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 대부분에 플러스 알파들은 더 흉측한 모습으로 돌아다니곤 했지만, 딕은 죽은 사람이란 걸 감안하고도 잘생긴 미남이었다.
접근 방식도 남달랐다. 망했단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된 팀을 향해 딕은 손을 까딱 흔들며 인사했다. 귀신이 인사라니. 전환점에 든 자신의 인생에서 보아온 귀신들은 모두, 자신이 귀신을 볼 줄 안다는 걸 알자마자 달려와 겁에 질리게부터 만들었는데, 딕은 달랐다. 인사라니. 딕은 날 볼 수 있구나, 신기하네. 같은 친근한 말을 건냈고, 팀은 사람이랑 대화하는 기분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러나 저러나, 그 귀신이나 이 귀신이나 똑같다고, 딕 역시 팀에게 말을 건 이유는 부탁이었다. 내 부탁 좀 들어줄래? 정중하지만, 따지고보면 여타 귀신들이 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에 팀은 인상을 찌푸렸다.
‘ 간단한 거야. 좀...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며 빙긋 웃은 딕은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켰다. 그 곳엔 방금 전 팀과 부딪힐 뻔 했던 사내가 정찰이라도 하 듯 백화점을 돌다 매장의 직원들에게 인사를 받고 있었다. 허리가 아주 꺾일 기세로 인사를 하는 직원들을 보니 딱 봐도 사내가 이 백화점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팀은 다시금 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 데미안 웨인. 성만 들어도 딱 감이 오지? 내 동생인데, 전해줄 말이 있거든. ’
“ 웨....! ”
팀은 예상치 못한 거물의 이름에 입을 다물었다. 데미안 웨인이라니. 동굴 속 박쥐처럼 집 안에서만 지내며 인생의 벗처럼 지내왔던 인터넷과 티비에서 자주 언급되어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이름에 팀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속삭였다.(속삭여도 주위에선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이상하겠지만, 큰 소리로 말하는 것 보단 시선을 덜 받았다)
“ 하지만 형은 ‘그레이슨’이라면서요. ”
‘ 음, 맞아. 가정사가 좀 복잡하거든. ’
어깨를 으쓱이며 별 일 아니란 듯 말하는 딕에 팀은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가 사내 - 엄연히 따져 이 백화점의 주인인 데미안 웨인을 턱짓을 가리키며 팀에게 움직이길 부탁했다. 말이 좋아 부탁이지, 요구나 다름 없다 생각하며 팀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발을 움직여야 했다.
“ ...그래서, 형이 전하고 싶단 말이 뭔데요? ”
팀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데미안의 뒤를 밟으며 물었다. 딕은 걸음소리 없이 걸으며 말했다.
‘ 전해주지 못한 물건이 있거든. 그게 어디있는지만 알려주면 돼. ’
“ 그게 어디 있는데요? ”
‘ 나랑 데미안만 아는 곳. ’
그럼 나보고 지금 데미안 웨인씨한테 가서 ‘돌아가셔서 당신 옆에 붙어있는 딕 그레이슨씨가 저한테 와서 말하시길 전해주지 못한 물건이 있으니 당신이랑 그레이슨씨만 알고 있는 곳에 가서 찾아보라는데요’ 라고 말하라구요? 그것 참 말 되네요. 톡 쏘아 말하는 팀에 딕이 하하, 웃었다. 새파랗게 뜬 안색에 뒤가 비치는 귀신인 주제에 생기있게 웃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팀이 덧붙였다. 잘못하다간 한 대 맞을 것 같은 인상도 그렇고.
데미안 웨인의 뒤를 밟는 건 예상치 못하게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저 말만 전해주고 오면 되는 쉽고도 어려운 부탁이었지만, 백화점 사장이 시찰을 하고 있으니 잘 보이려는 브랜드 매장 직원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가는 길에 와 인사를 건네고 말을 건네고 하는 바람에 팀이 그에게 말을 걸 타이밍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작 원흉인 딕 그레이슨씨는 그럼 부탁해, 하는 말과 함께 자신의 원래 자리(그러니까 데미안의 옆)로 가더니 뿅 하고 사라져버려서 팀을 더욱 곤란스럽게 만들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미행, 그리고 들키는 순간 곱게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나가서 얘기를 해도- 그러니까 이러나 저러나 곱게 끝날 결과는 없는 선택지의 갈래에 놓여 보이지 않는 끈에 매여 끌려가던 팀은 한눈 판 사이 시야에서 사라진 사내에 놀랐다. 사라진다고 잘 안보일 덩치도 아니건만 감쪽같이 사라진 사내에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발걸음을 빨리하던 팀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가 서있었던 곳에 다다르자마자 가방을 당기는 강한 힘에 뒤로 휘청 밀려야했다.
“ 너 뭐하는 놈이야. ”
짤막하게 들었던 목소리가 정확히 뒤에서 들리자 팀은 바짝 굳으며 꼬리 잡힌 쥐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딱 봐도 비싸보이는 수트와 단정한 차림새에 어울리지 않게 미간이 잔뜩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내 - 데미안 웨인이 자신의 가방을 붙잡고 자신을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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