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딕] 크리스마스
멜리님 리퀘로 받은 거라는데 안올려져있네요.. 드린 거 맞나...? /_\...
날이 춥다. 데미안을 억지로 끌고 나와 딕이 처음 꺼낸 말이 그거였다. 날이 춥다. 데미안의 빨개진 코끝 위로 목도리를 다시 덮어주며 딕은 굽힌 무릎을 세우고, 손을 뻗어 데미안의 손을 잡았다.
털장갑은 너무 애송이 같잖아. 그렇게 말하며 가죽장갑을 끼려던 데미안에 딕은 웃으며 맨손의 아이를 끌고 나와 자신의 코트 주머니 안으로 손을 숨겼다. 지금은 차갑지만 나중이 되면 따뜻해질 거야. 그의 손길을 데미안은 처음 거절하고 손을 뒤척거렸으나 완전히 빼진 않았다. 평상시 듣던 혀굴림만이 짧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며 코트 주머니 안으로 손이 미끄러져 들어갔을 뿐이었다. 매서운 추위에 언 손이 마주 잡히고, 아직은 따뜻하지 않은 코트 안을 덥히며 온기와 온기로 서로를 감싸안았다. 코끝이 아리도록 추웠지만 데미안도 딕도, 더 이상 춥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나는 이제부터 너한테 정말 위대하고도 중요한 걸 가르쳐줄 거야. ”
“ 퍽이나 ”
데미안은 기대하라는 듯 말을 늘어놓는 딕에 코웃음을 쳤다. 그가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던, 데미안에게는 그저 우스운 것들일 뿐이었다. 데미안에게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 이유 없이 밖을 나다니는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망토를 두르고 어둠이 깔린 고담의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머저리같은 빌런들의 얼굴을 부츠로 걷어차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휘황찬란하게 나무를 전기고문하고 있는 현장에 나와 히히덕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단 거였다.
딕은 데미안의 생각을 알았고, 데미안이 무얼 중시하는지도 알았고, 또한 그걸 마음 아파할 줄 알았다. 딕의 어린 시절은 데미안이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망토로 점칠 되어 있었다. 딕은 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이건 제대로 된 어린 시절이 아니야. 딕은 그걸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거나, 그걸 후회하는 짓 따윈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탄생마저 평범하지 않은 동생에게 그 평범함을 가르쳐 주지 않는 가혹한 짓은 하지 않았다. 딕은 데미안이 산타를 믿는다거나, 트리에 양말을 걸고 잔다거나 하는 꿈같은 것 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적어도 크리스마스라는 걸 즐겼으면 했다. 가족과 모여 악취 나는 골목에서 빌런들의 엉덩이를 걷어차주는 행복이 아닌, 모두 모인 식탁에서 큰 덩치와 노릇한 살결을 자랑하는 칠면조를 뜯어 접시에 덜어 먹는 저녁식사가 주는 행복 같은 것들. 딕은 그런 것들을 데미안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는 나도 알아, 그레이슨. 그게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도 잘…… ”
“ 그게 쓸데없단 생각을 한 것부터가 모른단 거야, 데미. 크리스마스는 말이지… ”
“ 그레이슨, 나는 세 살배기 애새끼가 아니야! ”
코트 주머니 속에서 맞잡고 있던 손을 쳐내듯 빼내며 소리치는 데미안에 딕이 벌린 입으로 뱉던 말을 멈추었다. 데미안은 딕의 주머니 안을 벗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손을 에워싸는 냉기에 냉큼 제 코트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었다. 차갑다. 자신의 코트 주머니 안은 데워 줄 온기가 없어 겉과 다름없이 차가웠다. 데미안은 좀전까지 함께 손을 데웠던 딕의 코트 주머니를 떠올렸지만 다시 그의 손을 맞잡는 짓은 하지 않았다.
데미안은 딕이 저렇게 무언가에 대해 떠드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가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게 싫었을 뿐이다. 데미안은 딕이 저렇게 자신에게 크리스마스나, 여타 그런 류의 축하일을 몸소 가르쳐주려고 하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오지랖일 것이다. 딕은 늘 그랬다. 질투날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잘 웃어주고, 잘 대해주고, 그의 양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에게 함께하길 권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걸 귀찮고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하더라도.
그레이슨이 그렇지 뭐. 데미안은 혀를 쯧 차며 목도리 안으로 코끝을 밀어넣었다. 자라가 목을 움츠리듯 어린 어깨가 위로 솟았다. 딕은 단련되었지만 아직은 제 나이다운 어린 동생을 보며 미소 지었다. 틱틱거리지만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이. 딕은 데미안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 머리맡에 양말도 걸어둬야지. ”
“ 그만해라 ”
“ 지금은 착한 일 많이 해서 우리 데미 양말 안에도 산타가 선물을 넣어줄거야. ”
“ 아 쫌! ”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데미안의 목소리에도 딕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 팀은 작년에 양말 안에 산타가 선물을 넣고 갔거든. 너도 받을 수 있을 거야. 뭐 갖고싶은 거 없니? ”
“ 그딴 거 없… 뭐? 드레이크가 머리맡에 양말을 건다고? ”
앗, 비밀이야. 입술 위로 검지를 걸며 웃는 딕의 표정은 말과 어울리지 않게 장난기가 그득했다. 드레이크가 그 나이 먹고 아직도 산타를 믿는다 이거지? 하! 비웃음을 한껏 날리는 데미안을 보며 딕이 속으로 팀에게 심심찮은 사과를 하며 데미안의 어깨에 올린 손을 들어 작은 머리통을 자기 몸으로 잡아당겼다. 빠르지도, 거칠지도 않은 손길로 자신 쪽으로 머리를 기대게 한 딕에 데미안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팀에 대해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런 스킨쉽이 낯설지 않은 사이. 딕은 데미안에게 팀과 너무 싸우지 말라 답하며 데미안의 까슬한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 곧 크리스마스야, 데미안. 행복하다. ”
딕의 말에 데미안이 짧게 혀를 찼다. 딕은 하얀 입김을 뿜으며 웃었다. 둘은 한참이나 그렇게 환한 불빛 아래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