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DC/Marvel

[뎀딕] 딕을 키우는 데미안?

눅군가 2013. 8. 24. 23:57

모 처에서 읽은 딕 개취급하는 데미안이 너무 좋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씀...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아이는 자신들의 노집사와 같은 향이 풍겨지는 코코아를 건냈다. 웨인저의 고풍스러운 느낌보다 한층 더 오래되고, 한층 더 음울한 분위기가 풍기는 방 안에서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 하얀 머그컵을 받으며 딕은 그를 봤다. 자신의 막내 동생. 스스로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제 아비만큼이나 멋있고 말끔하게 자란 데미안이 건네준 것과 같은 머그컵을 들고 맞은 편 소파에 앉아있었다.

딕은 데미안이 알 굴가로 돌아가 알 굴의 뒤를 잇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진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전개 중 하나일 뿐이었다. 상상 안에서 더는 발을 뻗고 나아가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 중 하나였기에 딕은 한 때 라스 알 굴이 썼던 방 안에 데미안이 주인으로 서있는 모습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최악의 전개는 그곳까지 뻗쳐있지 않았다.

 

데미안은 이제 자신을 훌쩍 넘을 만큼 키가 크고(아마 브루스만큼 됐을 것이다. 혹은 그것보다 더 크거나) 어린아이의 매력 포인트같던 볼살마저 홀쭉하게 빠져 자신이 알고 있던 소년의 모습은 이목구비에서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데미안은, 정말이지 지나칠 정도로 브루스를 닮아있었다.

평소 아버지를 존경하고 그처럼 되고 싶어하던 소년의 완벽한 성장에도 딕은, 어쩌면 당연하게 데미안이 낯설게 느껴졌다. 거기다 데미안을 만난 곳은 웨인저나 그 아래 마련된 배트케이브도 아닌 알 굴의 본거지였다. 쉽사리 익숙해져서 잘 컸네 내 동생, 하고 농담을 건넬 수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몸집만큼이나 꽤나 어른스러워져서, 딕의 의심에도 날뛰지 않았다. 데미안 본인도 딕의 의심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데미안의 큰 모습이 낯선 딕만큼이나, 젊은 딕의 모습에 향수가 어린 데미안은 방으로 그를 데려와 코코아 한 잔에 설명을 곁들였다.

딕이 싸움 도중 갑작스럽게 일그러진 공간에 빨려들어간 후 온 곳은 미래인 듯 했다. 딕은 수수께끼라도 내 듯 과거의 일을 말했고, 데미안은 그 과거의 일을 대부분 딕이 기억하는 것과 거의 같게 기억하고 있었다. 딕은 제 물음에 답하는 데미안을 보며 거의 확신했다. 눈앞의 말쑥한 청년은 자신의 10살짜리 막내 동생이 맞았다. 그 확신에 믿음을 가한 것은 자신을 보는 데미안의 시선이었다. 향수가 잔뜩 어린, 10살 소년에게도 찾아보기 어려운 물기어린 향수가 자신을 비추는 그의 눈에 어려있었기 때문이다.

 

“ 많은 일이 있었어. ”

 

데미안은 소리 없이 코코아를 몇 모금 마시고 얘기했다. 딕은 과거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에 나온 청취자처럼 데미안의 말을 들었다. 더 이상 10살이 아닌 로빈. 조금 더 자란 데미안. 저스티스 리그의 위기. 배트맨의 신변에 대한 위협. 웨인. 라스 알 굴의 죽음. 반란. 그렇게 되고싶어하던 배트맨을 포기하고, 균형을 위해 알 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데미안. ……딕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하지만 알아서도 안되는 이야기들. 데미안은 그저 큰 사건의 뭉텅이만을 간략하게 얘기했고, 딕은 자세한 사정을 묻지 않았다. 그 뭉텅이들을 애기하는 것만으로도 데미안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데미안의 얘기가 끝나고, 딕은 묻고싶은 것이 많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많은 걸 목 아래로 흘려보냈다. 그것을 흘려 보내는 데에는 데미안의 코코아가 한 몫 했고, 덕분에 하얀 머그컵 안에 담겨있던 코코아는 그 자국만 여실히 남기고 사라진지 오래였다.

차가운 방. 불이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넓은 만큼 무거운 방 안에 남아있는 두 사람. 이곳에 와서 다른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기에 딕은 자신이 오지 못했다면 이 넓은 곳에는 데미안만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 그레이슨 ”

 

잠깐의 침묵 속에 먼저 말을 꺼낸 건 데미안이었다. 어린애다운 목소리는 없이, 변성기가 훨씬 전에 지나 듬직한 남성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뱉은 데미안은 잔잔하지만, 아직도 제 모습을 담으면 무언가가 진득이 떠오르는 눈을 하며 딕을 보고 있었다. 데미안은 자신을 부른 뒤로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앉아있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과거의 흔적만이 남은 이목구비에서 그 눈만은 자신이 알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딕은 내용물이 사라져 차갑게 식어가는 잔을 내려놓았다.

 

“ 데미안. 같이 잘까? ”

 

“ 뭐? ”

 

눈을 휘둥그레 뜨는 데미안에 딕이 웃음을 흘렸다. 뭘 그렇게 놀라.

 

“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너 한참 어릴 때. 이렇게 말하니까 이상하다. 너 열 살 때. 우리 리틀 디가 아직 ‘리틀’일 때 말야. 악몽이라도 꾼 건지 뚱한 얼굴로 복도에 타이투스랑 서있으면 내가 종종 같이 자줬잖아. 기억나? ”

 

딕은 엊그제 같은 일들을 먼 과거형으로 말했다. 크고 검은 개를 옆에 세우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복도에 서있던 데미안. 날이 잔뜩 선 고양이같은 그 아이를 살살 달래 방으로 데리고 오면, 싫다는 티를 일부러 팍팍 내면서도 결국 자기 품에 조그만 몸을 맡기고 잠들곤 했던 제 동생을 떠올리며 딕이 웃었다. 마음대로 해. 몇 번이고 들어왔던 퉁명한 허락에 딕은 손을 뻗었다.

 

데미안의 침실은 넓었다.

웨인저에 있는 데미안의 방 역시 어린 데미안이 쓰기에는 너무도 넓고 황량한 방이었지만, 이곳은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데미안이 사용하기에도 크고, 외로워 보였다.

싫다더니 팔은 자기가 먼저 감네. 투덜거리며 혀를 차던 것도 잠깐, 익숙한 듯 품에 저를 안으며 누운 데미안에 딕은 자세를 고치며 데미안과 마주보게 누웠다. 이제는 품에 안기는 것이 아닌, 저를 품에 안는 데미안이 이렇게 큰 것이 기특하기도 하고, 이렇게 답싹 안겨오는 데미안에게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도 없어, 딕은 말 없이 데미안의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짧게 친 머리카락이 손끝을 간질이기도 하고 쿡쿡 찌르기도 했다. 그 느낌만은 작은 그를 안을 때와 다를 바 없어 딕은 데미안의 등을 감싸 안고 토닥였다.

 

“ 이러기엔 좀 벅찬 크긴데. ”

 

장난스럽게 웃으며 커진 덩치에 감기 힘든 팔로 데미안을 감싸 안은 딕이 말을 이었다.

 

“ 누가 보면 우스운 광경일거야. 덩치 큰 남자 둘이서 한 침대에서 꼭 끌어안고있고. ”

 

데미안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아직도 자신의 등 뒤에서 파닥거리는 딕의 손길을 느끼며 조용히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딕은 찌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패인 자국이 남아있는 미간으로 눈을 돌렸다. 진하게 주름 잡힌 미간을 손으로 꾹 눌러보고 싶다 생각하다가도, 실행으론 옮기지 않았다. 딕은 데미안의 등을 토닥이던 손을 멈췄고, 데미안은 감았던 눈을 뜨며 딕을 바라봤다. 아주 가까이서 데미안의 푸른 눈을 마주하던 딕은 눈을 휘어 웃었다. 내 동생. 딕은 몸을 뒤척여 데미안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 자자. ”

 

고개를 끄덕이듯 데미안이 눈을 감았다.

 

 

 

 

 

( 중략 )

 

 

 

 

 

“ 널 데려올 수밖에 없었어. 여기가 아니라면, 다른 차원에서라도 데리고 와야 했지. 지금의 너처럼 말야. ”

 

강한 손짓에 흔들리며 은색 몸에 묻은 피를 튀겨낸 장검이 검집 안으로 몸을 숨기는 소리가 섬뜩하리만큼 날카롭게 울렸다. 딕은 정확하게 힘줄이 잘려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발목을 잡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 손을 떨었다.

 

“ 내 잘못이 아냐. 먼저 죽어버린 네 잘못이지. ”

 

딕은 으득 소리가 나게 이를 다물었다. 데미안은 검집에 든 검을 든 채 딕을 내려다봤다. 어린아이의 악의 없는 잔혹함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푸른 눈동자가 주저앉은 딕 위로 높은 위치에서 올곧게 쏘아져내리고 있었다.

 

“ 이곳으로 와야 했을 때, 어머니가 유일하게 허락해준 게 너 뿐이었어, 그레이슨. ”

 

딕은 피는 심하게 베어나오지 않지만, 힘이 일체 들어가지 않는 발에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데미안 어째서, 같은 류의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같은 침대에서 서로를 토닥여주며 잠들었던 제 어린 동생에 대한 배신감에 눈을 치켜뜨며 입을 열자 ‘이빨 드러내지 마, 그레이슨’ 이란 말과 함께 거세게 관자놀이를 강타하는 검집의 끄트머리에 정신이 혼미해졌기 때문이다.

 

“ 타이투스를 데리고 오려 했지만 어머니가 보낸 어쌔신한테 죽어버려서 데리고 올 수 없었어. 날 지키려고 이빨을 세우다가 죽었지. ”

 

훌륭한 개였는데. 데미안의 어투는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었지만, 딕은 그것이 진심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끌어안고, 자신이 끌어안았던 그 날의 데미안의 눈동자에서 읽은 것을 딕은 진심이라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딕은 더 이상 데미안이 나타내는 감정이 진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가늠하고싶지도 않았다.

 

“ 그래서 널 데려왔어. 널 키워도 된다고 허락 받았거든. 적어도 네가 타이투스보단 오래 살 줄 알았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너도 병들어서 빨리 죽어버리더라고. 잘 길들여놨었는데. 쯧. ”

 

데미안은 짧게 혀를 차며 장검을 고쳐 쥐며 딕을 내려다보았다. 딕의 눈은 배신감과 함께, 한없는 패닉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하겠어. 다친 이마를 덮은 손아래, 그 한마디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푸른 눈동자를 보며 데미안은 말을 이었다.

 

“ 네 발목에 그건 간단한 윙컷이야. 넌 너무 잘 날아다니니까 언제 새장에서 날뛰다 철장에 머리를 박을지 모르잖아. ”

 

데미안은 장검을 원래 자리였던, 벽의 장식장에 걸어놓았다. 깨지고 날아가고 부서진 방의 가구와 장식품들 위로 장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가 몸을 뉘었고, 그 일련의 과정을 보던 딕의 눈 앞엔 어느새 데미안이 바짝 다가와있었다.

 

“ 나쁘지 않을거야, 그레이슨. ‘원래의 너’도 처음엔 반항했지만, 곧 익숙해 졌으니까. 몇 밤 지나고 다시 길들여진다면, 너는 예전과 똑같이 내 침대 위에서

 

내 머릴 만지작거리다 잠들거야. 이것에서 변하는 건 별로 없어. 넌 어차피 날 사랑하고, 그 사랑이 ‘동생’에서 ‘주인’으로 바뀌는 것 뿐이니까. ”

데미안의 움켜쥔 주먹이 딕의 안면을 강타했다. 딕은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며 발목의 잘린 부분이 벌어지는 끔찍한 고통에 억눌린 신음을 내질렀다. 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딕을 몇 번 더 강타한 데미안은 거친 손길로 딕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머리를 움켜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고, 저를 질질 끌고가면서도 딕은 머리를 얻어맞은 충격에 흐느적거리며 데미안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데미안은 부드러운 카펫 위로 동선 따라 딕을 끌며 핏자국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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